묵상하기

마태복음 1장 1–17절 묵상하기: 샤머니즘과 기복신앙: 답은 예수그리스도

약사가든 2026. 1. 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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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은 샤머니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인간은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잘 살게 해 주는 신,
즉 기복의 대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걸까?

이 고민에 대한 하나의 답이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님의 족보 안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많은 사람들이 그냥 넘깁니다. 
이름이 너무 많고, 읽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족보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오해해 왔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오해를 어떻게 끝까지 참으시며 바로잡으셨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마태는 족보를 이렇게 나눕니다.

  •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까지

이건 단순히 역사순으로 나눈 것이 아닌 신앙의 고양–좌절–회복의 구조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하나님을 통해 잘 살고 싶었던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다윗이 왕이 된 것은  “믿음의 결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 아브라함도 자기 생존을 위해 아내를 팔았고
  • 다윗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 간음의 탐욕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었지만, 그들 또한  잘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믿음'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유다 왕국의 붕괴: 신앙이 샤머니즘이 될

다윗 이후의 유다 왕국은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성전은 있었고 제사는 계속되었고 종교 체계도 유지되었다.

하나님을 완전히 버렸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종교 속에 가두고  신앙은 이렇게 변질되어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셔야 한다”
“이 나라가 망하면 안 된다”
“제사만 제대로 드리면 괜찮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삶을 이끄는 주권자가 아니라,
나라를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가 되었고, 신앙은 관계가 아니라 보험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삶의 실제 문제들 (생존 및 풍요)을 위해 우상들을 함께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하나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우상숭배와 결합되며, 점점 샤머니즘화 되어 갑니다.
기복 신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보호가 사라진 이스라엘은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무너지고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됩니다.


바벨론 포로기: 그때도 함께 하셨던 하나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들의 희망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는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잘 살지도 못했고, 무시당하고 자유도 없던 포로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기복의 신앙은 죽고, 기다림의 신앙이 시작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샤머니즘의 해소

마태는 이 모든 역사의 끝에 예수그리스도를 둡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강한 왕도 아니었고,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를 즉시 해결해주는 신도 아니였고,

인간의 생존의 불안을 즉각 제거해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 가난하게 태어났고
  • 기득권의 보호받지 못했고
  • 결국 십자가에서 죽었다

샤머니즘이 기대하는 신의 모습과 정반대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샤머니즘을 끝내버리십니다.

즉 하나님은 알라딘의 지니처럼 인간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삶 내내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오늘의 묵상

인간이 쉽게 샤머니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식주, 곧 생존의 욕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현실을 이상주의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에 인간을 바꾸려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인류의 역사 내내 잘못된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예수로 모든 것을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기복신앙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을 기복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신앙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화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신앙을 가진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끝까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로

오늘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