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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13-21절: 하나님 안에서 이루는 온전한 사랑

약사가든 2026. 1. 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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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오늘 본문이 기록되었을 당시의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육신을 부정하거나, 사랑 없이 자신들의 ‘영적 우월감’을 앞세우는 사람들로 인해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고, 영적인 체험과 지식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을 보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것을 지적합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참된지 아닌지를 드러내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신앙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으로 확인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 요한일서 4장 13–16절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확신을 어떤 특별한 감정이나 강렬한 체험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압니다.
만일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즉,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 고백이 삶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표현은 느낌이나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관계, 다시 말해 매일의 삶 속에서 함께 걷는 동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우리의 삶을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한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육신은 현실로 일어난 사건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란 특별한 신앙체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그 고백이 삶의 방향을 바꾸고, 그 결과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이 세 가지가 함께 가는 삶을 말합니다. 


2) 요한일서 4장 17–21절

이어서 요한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면
우리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판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두려움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을  ‘형벌을 내리시는 심판자’로만 바라볼 때,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둠이 빛 앞에서 버틸 수 없듯이,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거할수록 두려움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형제는 눈에 보입니다.

보이는 사람을 외면한 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두 개의 다른 계명이 아니라, 하나로 묶인 계명입니다. 둘은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 위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 위에 서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여전히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따른다면, 오늘 본문은 반드시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겁주며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로 부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두려움은 점점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이웃을 향해 흘러가게 됩니다.

 

물론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감정을 소모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며,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완벽한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삶이 미움과 자기중심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사랑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더 많은 지식을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곁에 있는 이웃에게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